문화재청은 올해 아관파천 120주년을 맞아 고종의 길을 복원 사업을 발표하였습니다.
분명 학교 다닐 때 아관파천에 대해 배웠는데 이 기사를 접하고 보니 그게 어떤 사건이었지 싶어서 오늘은 포스팅 주제로 아관파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합니다.
저와 같이 고개를 갸웃하시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아관파천 사건의 전말>
구한말 우리나라는 자립적인 국가의 운영이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청나라와 일본, 러시아, 미국, 영국 등이 우리나라를 차지하려고 발버둥 칠 때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은 조선 정부 내의 러시아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명성황후 시해 사건을 일으킵니다.
이로 인해 유림들이 전국적으로 의병을 일으켜 저항을 하고 일본 세력의 만행을 규탄하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신변의 위협을 느낀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기게 되는데 이를 '아관파천'이라고 합니다.
외부세력에 왕이 얼마나 무능하고 나약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던 사건이라고 생각하는대요.
아관파천을 계기로 일본의 세력은 약화되었으나 러시아가 이후 우리나라에 많은 이권을 요구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출처-문화재청)
문화재청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와 함께 덕수궁의 중요한 전각이었다가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해체 후 철거된 뒤에 경기여고가 들어섰던 선원전영역의 복원도 진행한다고 합니다. 역대 왕의 초상화(어진)를 봉안했던 선원전을 비롯해 서거한 왕과 왕비의 시신을 모셨던 빈전인 흥덕전, 신주를 임시봉안했던 혼전인 흥복전, 부속건물과 배후숲, 지형, 궁 담장 등의 원래 모습을 되살리기로 했다고 합니다.
종합 계획에 따라 2039년까지 약 56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라고 하네요.
우리가 오늘 다루는 고종의 길은 올 9월에 공사를 착공하여 내년 말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느 신문기사에 의하면 치욕의 킹스로드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하던데 아관파천에 대한 의견은 분분합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어쨌든 받아들이는 사람의 주관에 의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고종이 당시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을 하지 않았다면 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당시의 고종은 다른 선택을 또 없었을지도 생각해보게 됩니다.
분명한 것은 아관파천은 을미사변으로 인해 발생한 우리나라의 슬픈 역사라는 것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다는 글이 생각이 납니다.
조만간 착공하여 내년에 완공될 고종의 길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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